법원의 판단
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이 본 핵심은 보험사가 병원에 직접 지급한 치료비를 언제나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급여와 같은 성격의 금액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. 근로복지공단은 재해근로자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하면 그 범위 안에서 피해자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신 행사할 수 있습니다. 이를 대위라고 합니다. 그런데 이 대위는 피해자가 가진 손해배상채권 전부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공단이 실제로 메워준 손해 부분에 한정됩니다. 다시 말해 공단이 지급한 보험급여와 같은 손해를 대상으로 하는 부분만 공단이 대신 청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. 그래서 자동차보험 쪽에서 먼저 지급한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돈이 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와 같은 치료에 대한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구별해야 합니다.
대법원은 책임보험처럼 한도액이 정해진 사안에서는 이 구별이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. 피해자의 전체 손해액이 책임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보험자가 피해자에게 이미 지급한 돈이 어떤 손해를 전보했는지에 따라 공단이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. 만약 보험사가 지급한 치료비가 산재보험급여와 상호보완 관계에 있다면 같은 손해를 이중으로 메우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. 반면 보험사가 지급한 치료비가 산재보험급여와 치료기간이 다르거나 치료항목이 달라 서로 다른 손해를 메운 것이라면 이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.
판결문을 보면 대법원은 보험사가 지급한 입원치료비 가운데 일부는 공단이 지급한 보험급여와 치료기간이 다르고 일부는 치료항목 자체도 다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. 통원치료비도 마찬가지였습니다. 치료받은 시기가 일부 겹칠 수는 있어도 실제 치료 내용까지 같은지는 따로 심리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. 결국 병원비를 일괄 공제할 수는 없고 어떤 기간의 어떤 치료에 대한 지급인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. 이 사건에서 원심은 보험사가 지급한 치료비를 적극적 손해에서 곧바로 공제한 뒤 남은 금액을 기준으로 책임보험금 범위 내 청구액을 계산했습니다. 대법원은 이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봤습니다. 먼저 따져야 할 것은 보험사가 낸 치료비가 공단 보험급여와 상호보완 관계에 있는지 여부인데 그 판단이 빠졌기 때문입니다.
결국 대법원은 손해배상과 산재보험이 함께 문제 되는 사건에서는 지급 주체보다 지급 대상이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. 보험사가 냈다는 사실만으로 공제 여부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이 어떤 손해를 메운 것인지가 판단 기준이 됩니다.